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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같은 남자친구

    양손잡이

    박수미

     

    환기까지 선선하게 된 깔끔한 거실 안. 열린 창문으로 가을바람이 들어와 머리칼을 간질였다. 시선의 끝에는 민혁의 손에 들린……

     

    “김민혁! 그거 뭐야?”

    “어? 아, 뭐가? 아무것도 없는데?”

     

    뭐야, 진짜 아무것도 없네.

    아닌데, 분명 손에 뭔가 들려있는 걸 봤는데? 뭔가 장신구 같은.

    수상하게 노려보고 있으려니 민혁이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큼직한 덩치로 나를 자신의 품 안에 넣었다. 여전히 거짓말을 하는 게 신경 쓰여서 표정이 자연스럽게 꽁해졌다. 머리 위에서 민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간지럽게 코를 부벼왔다.

     

    “귀여운 재희. 난 역시 네 냄새가 제일 좋아.”

    “아니, 손에 정말 뭐 있었는데. 어디 숨겼어? 왜 숨기는데?”

    “멍! 정말 없었다니까 멍.”

     

    그가 몸에 뭐라도 숨긴 건 아닌가, 상체를 마구 더듬어보던 중 뒤늦게 이상한 게 들렸음을 깨달았다.

    멍?

    민혁은 평소에도 애교를 많이 부리는 사람이었지만, 이건 정말 강아지 소리 같지 않나. 당혹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자, 그곳엔 민혁이 아닌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금빛 털, 동그란 눈망울에 콕 박힌 조명 빛……

     

    “멍, 멍!”

     

    *

     

    “헉! 아 씨, 뭔 개꿈……”

     

    활짝 걷어놓은 커튼에 아침의 햇빛이 살인적으로 눈을 찔렀다. 커튼을 안 치고 잤던가.

    어제 죽어라 마신 술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힘겨웠다. 일어나려 할 때마다 목에서는 좀비 같은 소리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 토할 것 같다. 이제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술 마시는 버릇은 좀 고칠 때가 됐는데.

    꿈은 또 무슨 그런 개꿈을 꿔서는.

     

    하긴, 그런 식으로 헤어졌는데 꿈에서도 개새끼로 나올 만도 하지.

    가까스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어제, 나는 솔로가 됐다. 그것도 문자 한 통으로.

    일방적인 통보였다. 시름시름 앓으면서 화면을 넘기면 김민혁이라는 이름 아래에 ‘헤어져’라는 메시지가 자리 잡고 있다.

    구질구질해 보일까 봐 ‘왜?’ 한 번을 보낸 뒤로는 더 물어보지도 못했다. 꼴에 자존심 좀 차리겠다고 하루 정도의 유예기간을 주자는 심보였다.

    1주년 되기 3일 전에 차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평소에도 가끔 뜬금없이 일이 생겨 연락이 끊길 때는 있었지만, 적어도 단답은 하지 않던 사람과의 마지막이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다.

     

    민혁과의 마지막을 상상해본 적이 없던 건 아니다. 이미 4명 정도의 남성 편력이 있는 몸으로써, 분명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마지막을 상상한 적은 없었다.

    내 주변에는 항상 이상할 정도로 개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자친구들도 그랬다. 도베르만 같은 회사 상사, 말티즈 같은 고등학교 친구, 달마시안 같은 소개팅남.

    당장 어제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 다은도 큼직한 푸들 같은 친구였다.

     

    어젯밤에 술집에서 조용히 하라고 경고까지 받을 정도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으면 화가 좀 가라앉았을 만도 한데, 문자를 다시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죽일까?

    하고 생각해도, 물론 숙취에 죽는 건 나였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자마자 엉금엉금 화장실로 기어가 어제 먹은 걸 한가득 게워냈다.

     

    “술을 마실 게 아니라 찾아가서 죽였어야 했는데……”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온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김민혁. 몸 좋고 얼굴도 좋고, 귀엽기까지 했지만 머리가 안 좋은 게 흠이었다기로서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찰 줄이야.

     

    갑자기 휴대폰이 울려서 화들짝 놀랐다가, 화면을 보니 다은에게 온 전화였다.

    아, 어제 술 같이 마시면서 엄청 민폐 끼쳤을 것 같은데. 자는 척 받지 말까, 생각하다가 슬금슬금 초록 버튼을 옆으로 넘겼다.

    음. 진상 짓을 했으면 사과는 해야지. 어떻게 회사까지 같이 입사한 고등학교 친군데.

     

    “여보세요.”

    [속은 좀 괜찮아?]

    “아니, 죽어가는 중. 나 어제 괜찮았어?”

    [어제?……예뻤지?]

    “아니, 아니. 그 괜찮았냐 말고. 뭔 짓 안 했냐고.”

     

    얘는 항상 이렇게 플러팅을 치더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다은의 얼굴을 떠올리며 흐뭇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도 내가 친구는 잘 사귀었지.

     

    [술집에서 쫓겨난 거 말곤 아무 짓도 안 했어.]

    “미안.”

     

    경고만 받은 게 아니라 쫓겨났었구나…….

     

    [괜찮아, 너 헤어질 때마다 그래서 익숙한데 뭐.]

    “진짜 미안.”

    [하하. 많이 힘들면 도와줄까? 밥은 먹었고? 못 먹었으면 가서 죽이라도 끓여주게.]

    “됐어, 어제도 그렇게 고생했는데. 너 쉬어. 근데 자꾸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네가 개를 키웠었나?”

    [으응.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넌데, 괜찮아. 아, 개 나오는 영상 보고 있어서 그래.]

    “아, 영상. 얘 말하는 것 좀 봐. 나 차였다고 네가 애인 역할 대신 해주는 거야? 자기야~ 할까, 자기야?”

     

    웃으면서 말하려니 한창 걱정하듯 굳어있던 다은의 목소리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때 ‘택배입니다.’ 소리와 함께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뭐야, 저 택배시킨 거 없는데요. 옆집 거 아니에요? 잠시만, 전화 이제 끊자. 계속 말하니까 속 울렁거린다.”

    [응, 푹 쉬어. 내일 회사에서 보자. 너무 화내진 말고. 걔도 나름대로 벌을 받을 거야.]

     

    이런 오피스텔에서는 주소 잘못 적어서 다른 호실에 배송되기도 하니까.

    전화도 끊으면서 힘겹게 문 앞까지 기어가 외쳤건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기요, 안 들리세요?”

     

    역시 대답은 없었다.

    하, 나. 뭐가 이렇게 짜증 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면서 현관문을 열었으나, 문 앞에는 사람 머리통만 한 택배 하나가 놓여있는 게 다였다.

    내가 시켜놓고 까먹은 걸 수도 있으니 주소를 확인해보았으나, 주소란은 텅 비어있었다.

    말도 없이 두고 가버린 사람에, 지워진 주소. 갈수록 찝찝해져서 결국 택배는 들이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저녁까지 여섯 시간을 내리 잠들어버렸다. 내일이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데, 일요일 하루를 이렇게 폐인처럼 보내니……

     

    훨씬 개운하다! 한창 찌뿌둥했던 숙취도 훨씬 괜찮아졌다.

    그래, 잘생기긴 했지만 다른 잘생긴 남자들도 많으니까! 처음 깨져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화낼 필요가 없지. 음.

    적어도 저번에 게임 메시지로 헤어지자고 했던 남자보다는 낫지 않은가? 전남친들 이름을 노래로 흥얼거리면서 저녁을 사러 나가려 문을 열었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정말 없어졌네, 택배. 아니, 뭐 요즘 우리 오피스텔에 나온다던 택배 도둑이 어련히 가져가겠거니 싶긴 했는데.

     

    괜히 찝찝한 기분에 손잡이를 만지작거릴 때 휴대폰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민혁에게 따로 설정한 메신저 알림음이었다.

    본능적으로 곧장 확인하려 휴대폰을 꺼냈다가 또 인상을 팍 구겼다.

     

    [내 집에 있는 네 물건들 보내놨어. 도착했을 거야.]

     

    와, 지금, 그냥 정말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또.

    휴대폰을 든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휴대폰 모서리에 눌리는 마디가 다 얼얼했다.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서 뒷골이 당겼다.

     

    잠깐, 그럼 설마 낮에 왔던 그 택배가…….

    화를 내기도 잠시. 머리에서부터 열이 다시 폭포수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상상이 휘몰아쳤다. 옆집 사람이 가져가서 열어봤을 경우, 누군가 훔쳐서 열어봤을 경우, 경비원 아저씨가 열어봤을 경우, 누가 열어봤을 경우, 열어봤을…….

     

    다급하게 경비실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속도마저 느리게 느껴졌다.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 그 집에 있는 내 물건들이라 하면, 보면 안 되는, 아무튼 좀. 쪽팔린 게 많이 들어있을 텐데!

    머리가 반은 까져 있는 경비원은 트로트를 흥얼거리면서 태연하게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다가, 내가 노크도 없이 들이닥치자마자 휘청거리며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아니, 아가씨. 거 아무리 그래도 노크는 해야 하는 거 아니요?”

    “아저씨, 택배요. 제 방 앞에 있던 거. 혹시 못 보셨어요?”

    “또야? 하, 그 미꾸라지 같은 놈……”

     

    경비원은 잠시만. 하더니 슬금슬금 하루 일정표라고 적힌 종이를 당겨 보았다.

     

    “아, 2시간 전이네. 그때 잠깐 순찰을 했거든. 복도 CCTV에 안 나왔으려나……오!”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경비원이 책상을 팍팍 두드렸다. 여기 보이네. 흐릿한 화질 속에서 까만 마스크와 모자를 쓴 사람이 상자 주변을 한참 맴돌았다. 그 사람은 경계하듯 두리번거리다가, 빠르게 상자를 들고 도망쳤다.

     

    “근데 이 살마이 워낙 꽁꽁 싸매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단 말이지, 어떻게 외웠는지 도망도 CCTV 사각지대로만 다녀서 여태 못 잡았거든. 거, 아가씨 중요한 물건이에요?”

     

    도둑이 화면을 빠져나갈 즈음, 하단에 적힌 시간은 생각보다 최근이었다.

    10분 전.

     

    “CCTV 좀 더 보고 찾아는 보겠지마는, 웬만하면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거야.”

    “예. 예, 일단 감사합니다. 제가 알아서 찾아볼게요.”

     

    10분 전이면 어떻게 찾아보려면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음은 착잡했지만, 일단 머리를 부여잡고 터덜터덜 건물 입구로 나섰다. 소고기 버거 세트로 하나 포장해오려던 계획이 무너졌다.

    아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사실 걔네 집으로 들고 간 게 별로 없었잖아.

    그 음흉한 물건을 빼면 칫솔이랑 옷 몇 벌 정도……. 그, 음흉한 물건. 성능 꽤 좋았는데. 칫솔 같은 건 버리겠지.

     

    버려. 버려? 다 정리하면 상자 버리러 쓰레기장에 가지 않을까?

     

    한순간 머리를 스친 생각에 기다려볼 새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건물 뒤편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누가 택배 상자를 들고 오는 순간 잡아버릴 생각으로 입구 옆에 있는 구조물 뒤에 몸을 숨겼다.

    음식물 냄새, 구리구리한 종이 냄새 같은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영상의 사람과 같은 체형의 남자가 투덜거리면서

    익숙한 얼굴, 앞집에 사는 또래의 남자였다.

     

    나는 당장 뛰쳐나가 남자에게 몸통박치기를 날리고, 떨어지는 상자를 받아 들었다.

    남자는 쿵 소리를 내며 벽에 내팽개쳐졌다.

    막상 손으로 받고 보니, 상자는 내 물건을 다 줬다기에는 너무 작은 크기였다. 설마 몇 개는 빼돌린 거 아니야? 사람은 헤어질 때면 옹졸해진다고, 미간이 구겨졌다.

    적막을 뚫고 남자가 슬금슬금 도망치려 하는 게 순간 한쪽 시야에 잡혔다. 정신을 퍼뜩 차리고 남자의 옷깃을 꽉 붙들었다.

    이렇게는 못 보내지.

     

    “나 태권도 검은 띠야. 안에 들어있는 거 봤는지 못 봤는지 똑바로 말 안 하면 말할 때까지 쥐어팰 줄 알아.”

     

    생각보다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는 발발 떨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 이상한 장난감 하나 들어있던데, 고작 그거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아, 이건 미안. 헛소리를 들었더니 손이 저절로…….”

     

    본능적으로 뺨을 한 대 때렸더니, 진짜 때릴 줄은 몰랐는지 밑에 깔린 남자는 더욱 파들거리고 있었다. 나도 정말 때릴 생각은 없었지만, 화를 참지 못해서 그만.

    그나저나. 정말 그, 좀. 그런, 장난감 하나만 보낸 건가? 나머지는 다 빼돌리고?

    한 번 열어본 듯 어설프게 닫혀 있는 상자를 힐긋 보았다가,

     

    “악!”

    “아이고 아가씨, 아무리 도둑놈이어도 사람을 막 패고 그러면 안 되지!”

     

    이번엔 김민혁에 대한 분노를 담아 반대쪽 뺨을 한 대 더 때렸다가, 경비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니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거기다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설마 이런 폭력적인 모습에 지쳐서 헤어지자고 한 건가?

    초반에는 민혁에게 티를 안 내려고 애를 썼지만,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날수록 편해져 점점 친구처럼 대하기는 시작했었다.

    부끄러워도 때리고, 기분 좋아도 때리고. 욕도 서슴없이 하고.

     

    무엇보다, 역시 아무리 괜찮다고 했어도 애 앞에서 방귀는 뀌지 말았어야 했나…….

     

    “……아저씨, 그 사람 경찰에 넘겨주세요. 상자 찾는 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안 돼, 아저씨, 한 번만요. 한 번만!”

    “피해 신고가 벌써 몇 번짼지 알어? 한 번은 무슨.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쯧쯧. 아가씨 고마워요! 이놈을 어떻게 잡았대.”

     

    저쪽에 신경을 쓸 정신이 없다.

    내일이면 민혁과 사귄 지 1년째다. 그 정도를 기억할 애정은 있었다. 항상 강아지처럼 애살스럽게 굴고, 만나면 머리부터 비비적거리는 대형견 김민혁.

    멍하게 사귀던 때를 떠올리며 구겨진 상자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들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내려놓으려니 남자의 말처럼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가벼울 양이 아닐 텐데.

     

    아, 성질 뻗쳐!

    곱게 열어볼 생각이었으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상자가 벽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혀 찌그러지고, 안에서 강아지 장난감 같은 뼈다귀 모양의 물건이 튀어나왔다. 잡은 상태가 아니라면 테두리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새까만 장난감이었다.

    엿먹으라는 건가?

    나도 모르게 꽉 쥔 주먹이 아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자존심만 세우다가 내일 일에도 지장이 가겠어.

     

    만나야겠다.

     

    한 번 결심을 하자 서늘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휴대폰을 들고 민혁에게 전화를 걸자, 기본 통화음이 오래 이어지다가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욕부터 나오려던 입을 꽉 다물고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꺼냈다.

     

    “김민혁. 우리 만나. 만나서 얘기해.”

    [……]

    “야, 안 들려? 문자로도 지 할말만 하더니 전화는 듣지도 않겠다?”

    [……멍.]

    “뭐라는 거야. 잘 안 들리는데.”

    [멍, 멍! 왈 으르르 컹컹!]

     

    뭔, 웬 개소리야?

    어이가 없어서 휴대폰을 멀리 밀어놓고 한참 보다가, 순간 머리에 뭐라도 맞은 듯이 고통이 일었다. 그리고, 잠깐 잊었던 기억이 몰려 들어왔다.

     

    꿈이 아니었어.

    김민혁이 개가 된 거, 그거 꿈이 아니었다고. 바로 눈앞에서 봐버렸단 말이야.

    그리고 누가 있었어. 누구지?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기억인데도 추상적으로만 남아 머릿속이 흐릿했다.

    정말로 개가 돼서 짖던 민혁의 모습만큼은 뚜렷이 기억났다. 울상인 눈빛……그럼 헤어지자는 문자를 보낸 것도 다른 사람이란 말인가?

     

    “야, 너 집이야?”

    [……낑]

    “아, 씨. 대답 못 하지. 음, 집이면 짖고, 아니면 대답하지 말아봐.”

     

    두어 번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가겠노라 약속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강아지 같은 남자친구가 정말 개였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제일 당황스러운 건. 민혁이 아닌 누군가가 그런 문자들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대체 누가, 왜? 어떻게? 민혁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난 건가?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아까워 긴 가디건만 걸쳐 입었다.

    그리고 몇십 분 전에 문자를 받았으니, 아직 민혁이 그 사람에게 협박을 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위험하니까 무기의 용도로 그나마 쓸만한 국자를 챙겼다.

    식칼은, 좀. 괜히 내가 잡혀가면 어떡해.

     

    경찰에는 전화해봤자 안 믿겠지. 사람이 개가 됐다니.

    민혁이 자취하고 있는 오피스텔과의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아, 차를 타고도 10분이면 금방 도착했다.

    심호흡을 하고, 장난감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들고 온 국자를 꽉 쥐고서 도어락을 열었다. 비밀번호가 아직 내 생일인 걸 보니, 머릿속에 들어찼던 민혁 납치설에 불이 붙었다.

     

    아무튼, 뭔가 튀어나오면 바로 때린다. 튀어나오면 바로 때린다.

     

    속으로 스스로를 세뇌하며 문을 확 열었다가, 한순간 시야를 한가득 덮치며 달려드는 존재에 눈을 질끈 감으며 국자로 머리를 내려쳤다.

     

    “깨갱!”

     

    깨갱?

    그제야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꿈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의 리트리버 한 마리가 나자빠져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이 씨, 민혁아! 야, 괜찮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 튀어나오래, 나 쫄게!”

     

    분명 개의 모습인데도 위화감이 없었다. 맞아놓고도 꼬릴 살살 흔들면서 머릴 들이대는 게, 개로 변하기 이전의 민혁과 다를 게 없었다.

     

    “집에 너 혼자야? 문자 보낸 사람은? 아니, 대답을 못하겠구나.”

    “끼잉, 낑.”

     

    민혁은 뭔가 표현하고 싶은 듯 두 발로 서서 열심히 앞발로 네모를 그려 보였다.

    근데, 그냥 재롱부리는 것 같은걸. 귀여운데? 입꼬리가 흐뭇하게 슬금슬금 올라갔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내가 차인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앞에서 열심히 앞발을 들썩들썩거리는 강아지의 조화가 마음을 해이하게 만들었다.

    민혁이 귀엽게 낑낑거리기 시작하니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

     

    아, 괜찮은데? 영문은 모르겠지만 남자친구를 잃고 개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지, 개지만 남자친구니까 둘 다 있는 건가?

    실실대고 있을 때, 민혁의 시선이 내 뒤로 향하더니 주둥이가 쩍 벌어졌다.

     

    “왜. 뒤에 뭐가 있……”

    “재희야.”

    “뭐야, 전다은.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너 사는 덴, …윽.”

     

    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개가 껴있는 것처럼 한 곳이 흐리던 머릿속이 점점 맑아졌다.

    꿈에서 봤던 사람의 흐릿했던 얼굴에 다은의 얼굴을 매치해보면 감쪽같이 맞아 떨어졌다. 말도 안 돼. 얘가 왜?

    잠시 아차 한 사이 손이 먼저 날아왔다. 잠깐 새 눈이 크게 뜨이고, 다은의 손바닥만이 보였다. 직후, ‘멍!’ 짖는 소리와 함께 다은이 갑자기 벽으로 밀려나 넘어졌다.

     

    경, 경고문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급전개된다고?

    심장이 크게도 쿵쿵거린 탓에 놓쳤던 국자를 힘주어 쥐었다. 어느새 내 앞에 봉실한 꼬리가 바짝 서 있었다.

     

    “아, 씨.” 다은이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욕짓거리를 뱉었다.

    “너, 너야? 김민혁 이렇게 만든 거?”

    “무슨 소리야, 재희야. 얘는 개잖아. 민혁이 아무리 개 같았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아니, 그런. 하, 그건 차치한다고 쳐도, 네가 이 건물에는 왜 있는데.”

     

    이 시간에, 이 집 앞에. 다은의 목소리는 발음이 또렷하지만 진정성이 있었다. 앞에 있는 개가 정말 민혁이고, 그때 본 게 다은이 맞다면 현혹돼선 안 될 말들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정말 민혁이 맞나? 인간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개가 돼. 눈앞에서 보긴 했는데, 기억도 흐리고. 정말 꿈이었던 거면 어쩌지?

    다은은 탁해진 눈으로 몸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다 기억하고 물어보는 거구나?”

     

    딸꾹.

    언뜻 ‘기억은 지웠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다은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그, 그래. 꿈이 아니구나.

     

    “그래서, 어쩌겠다고. 개랑 계속 연애라도 하게?”

    “가까이 오면 이, 이걸로 때릴 거야.”

     

    협박할 게 없어서 국자를 애써 치켜들었다. 다은은 조금씩 다가오던 걸음을 뚝 멈췄다. 겁을 먹었다기보단 여유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은의 수화기 너머 들렸던 개 소리도 민혁의 소리였구나.

    상황이 빠진 퍼즐 구멍을 채우듯 차곡차곡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왜?’였다.

    나는 문득 주머니에 넣어뒀던 장난감이 생각나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이건, 이건 뭔데 나한테 보낸 거야? 이것도 네가 보낸 거 맞지?”

     

    다은과 민혁의 눈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민혁이 이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다은이 민혁을 거칠게 당겨 끌어안았다. 민혁의 목에는 칼이 닿아 있었다.

    민혁은 축 늘어져서 목만 바짝 들고 있었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내놔. 그거 내려놔. 안 내려놓으면 이 개 죽여버릴 거야. 진짜 죽일 거야.”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중요한 건가 본데?

    의미 없이 부들거리던 국자는 주머니에 꽂아두고,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이렇게 상황이 비현실적이라곤 해도, 여태까지 봤던 다은이라면 진짜 찌르진 않으리라는 마음에 자신감이 붙었다. 장난감을 확 들어 당장 다가갈 듯 겁을 주었다.

    다은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치다 열리는 옆집의 문에 등이 부딪혔다.

    아, 이런 걸로 위협하는 꼴이 좀 웃기긴 한데. 이게 뭔데?

     

    “저기, 무슨 연기 연습을 하고 계신 건진 모르겠지만……좀 조용히 해주시면 안 될까요?”

     

    참. 여기 오피스텔 복도였지.

    머쓱해진 얼굴로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다가 다시 장난감을 확 다은에게 들이밀었다.

     

    “그. 그래. 일단 안으로 들어가, 전다은! 안 들어가면 확.”

     

    옆집 사람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좀 더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여전히 팽팽한 분위기 사이에서, 다은이 계속 방 안쪽까지 뒷걸음질치도록 유도했다. 내내 다은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언뜻 들리는 단어들은 먼저, 왜, 방식 정도였다.

     

    “전다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 물어봐 주는 거야? 정말 별 이유 아냐. 내가 먼저 널 가졌었는데, 얘한테 널 뺏기는 기분이었거든.”

    “아니, 이 싸이코야. 내가 물건이야? 우리 친구 아니었어?”

    “친구였지. 고백, 했었는데. 네가 진지하게 안 들어줬으니까. 항상 장난치지 말라고만 했지. 친구로라도 네 곁에 나밖에 없었으면 좋겠는데, 넌 계속 남자들을 사귀고……. 그거 알아? 너한테는 개들이 좋아하는 냄새가 나. 네 전남자친구들도 다 김민혁 같은 개였어.”

    “뭐? 그럼, 개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농담이었다고 해도 비참했겠지만, 다은은 웃기만 했다. 섬뜩한 상황과는 달리 정말 사랑스럽다는 웃음이어서 더 기가 찼다.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날 구해줬잖아. 너 아니었으면 그대로 발을 잘못 디뎌서 강에 빠졌을 텐데. 나 수영 못하거든.”

     

    정말, 아주 잠깐 그대로 빠지게 둘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운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지난날이 한 번에 다른 이유로 갈아엎어지니 정신이 혼미했다.

     

    “재희, 우리 재희. 성격은 거친데, 항상 내가 싫어하는 거나 작은 알러지까지 세심하게 기억해주고. 나는 너한테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

     

    이렇게 진심이었는데, 여태까지는 대체 어떻게 숨겼는지.

    그래도 아주 조금은 오래 지난 친구로서 애틋한 마음이 들 뻔했을 때, 칼을 쥔 다은의 손이 들썩거렸다.

     

    “근데 이젠 다 틀렸네. 재희야, 사실 나도 김민혁처럼 본모습은 개야.”

    “……뭐?”

    “어차피 이젠 친구로도 못 남겠지. ……아,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난 네 냄새 때문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는 거.”

     

    혼란스럽게 떨리는 눈이 민혁과 한순간 마주쳤다. 시무룩해 보이는 민혁의 눈이 내 손을 향하고 있었다. 민혁은 꼭 던지라는 것처럼 손을 휙휙 움직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열심히 그리던 네모가 혹시 택배 상자인가.

     

    나는 최대한 다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당황스러운 척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장난감을 단단히 쥐었다. 자, 이걸 다은한테 맞추는 거야. 몰라, 뭔진 모르겠지만 던지라잖아. 중요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미, 민혁이 진짜 개면 좀 어때, 인간일 때 그렇게 자상하고 착한데.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적막이 감돌았다.

     

    그 뒤부터는 난장판이었다.

    장난감을 던지자마자 다은의 머리에 적중해서는 그대로 민혁을 놓쳐버렸고, 그 과정에서 민혁이 살짝 긁혔다.

    펑! 소리와 함께 정말 민혁이 찔리는 줄만 알았던 나는 소리를 질렀다. 새까맸던 장난감이하얗게 변했을 땐 다은이 까만색 푸들이 되어 있었다.

    비명을 들었는지, 연기가 아닌 것 같기라도 했는지 옆집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경찰까지 달려왔다.

    일단 다은을 이곳에서 떼어내야 할 것 같아 바닥에 떨어진 칼을 숨기고, 모르는 강아지가 갑자기 들어와서 놀랐다며 푸들이 된 다은을 경찰에게 대뜸 맡겨버렸다.

    다은은 마지막까지 억울하게 발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민혁은 멍하게 있다가 나를 이끌고 가 서랍 위를 코로 툭툭 건드렸다.

    위에는 장난감처럼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새하얀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있었다. 민혁은 목걸이를 받자마자 보석을 젤리로 꾹 눌렀다. 그러자 이번엔 민혁이 펑, 소리를 내며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둘 다 부산스러워진 머리로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입고 있던 가디건이라도 민혁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목소리를 낮춰 다그쳤다.

     

    “대체 이게 뭐길래 너네가 막 변하고 그래?”

    “그, 설명하려면 너무 긴데……마법소녀 변신 펜던트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헤헤……”

    “뭐, 그래. 나도 지금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우리 하나만 똑바로 해. 왜 여태껏 숨기고 있었어?”

    “미안해. 숨길 생각은 없었는데. 다들 자연스럽게 섞여들어서 사니까 나도 괜찮을 줄 알았거든. ……말하더라도, 조상님 중에 강아지들의 세계에서 넘어온 조상님이 있다고 하면. 믿을래?”

    “음, 아니.”

     

    지금은 거기까지 수용할 뇌 용량이 부족했다. 가만히 수긍하며 끄덕이고 있으려니 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오래 친했던 다은의 마음을 실은 하나도 몰랐다는 게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 비현실적인 상황이 그저 허탈해서 웃겼다.

     

    “저기, 나……이거, 너 주려고 만들었었어.”

     

    민혁이 또 낑, 하는 목소리로 말하며 서랍 위에 있던 목걸이를 내밀었다.

     

    “언젠가 말하게 되면, 나를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아, 아까도 봤겠지만, 이게 있어야 우린 변할 수 있거든. 하지만, 이젠 내가 이상해서 싫다고 해도 이해할 테니까.”

     

    싫다고 하면 울 것 같은 얼굴로 뭘 이해한다는 거야.

     

    “이상하긴 내가 더 이상하지. 난 네가 개 인간이든, 인간이든 신경 안 써. 오히려 귀여워서 좋은데, 내 애인.”

    “재희야……!”

     

    개새끼라고 욕했던 건 절대 숨겨야겠다.

    민혁이 글썽거리며 나를 와락 끌어안더니, 또 펑. 하고 리트리버의 모습으로 변해서는 나중에 감정이 너무 격해져도 가끔 변한다며 변명을 덧붙였다.

    이런 모습에도 적응하려면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지만, 역시 귀여워서 나쁘진 않은걸.

    민혁의 꼬리가 쉼 없이 바닥을 두드리며 착착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정말 개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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